마음의 산책

[스크랩] 4강 - 내 친구

옐로미키 2011. 12. 16. 16:18

내 친구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같이 자란 이른 바 소꼽친구들이 열 명 정도 있다. 처음 결혼해서는 아이들 키운다고 바빠서 만나질 못했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자주 만나서 수다도 떤다. 역시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해소 되는 아줌마들은 만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책방을 경영하는 친구는 스무 살에 시집을 갔다. 친구는 시집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시집을 가게 됐다고 얘기했다. 그다지 풍족하게 생활한 적이 없는 친구는 5남매의 장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구두방을 했다. 지독하게 구두쇠여서 친구들이 강 구두쇠로 불렀다.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로 일관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집을 몇 채, 땅을 몇 평 사서 결국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6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의 기대에 부웅하지 못한 장남은 결국 아버지 눈에 벗어나서 백수로 살다가 아버지 뒤를 따라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결국 장녀인 그녀는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마음으로는 친정식구들을 때때로 챙기고 보살펴야 하는 부담감까지 안게 되었다.

 

그녀는 만화를 도매로 판매하는 책방을 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책을 사가는 이들은 도매상이기 때문에 몇 십권씩 사가는 책을 묶어서 포장해서 차에 실어주는 것까지 했다. 그리고 억척스러운 그녀는 아버지를 본받아서인지 돈을 많이 모았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녀의 아이들은 미국에서 몇 년간 유학을 하고 큰 딸은 미국에서 취직을 해서 반려자를 만나 뉴욕에 살고 있고 둘째와 막내는 한국에 들어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녀는 신랑이 도와주지 않아도 하루 종일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만족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남편은 언제나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잔소리나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닮아서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쓸 줄을 몰랐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자신을 가꾸고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고 충고했지만 그녀의 일관된 자존심은 흔들릴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입이 돌아가 버렸다. 구안와사가 된 것이다. 친구들은 스트레스와 너무 무거운 책을 들어 날라서 생긴 후유증이니까 쉬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여전히 가게를 지켰다. 현금을 만지는 가게를 그녀가 떠나기란 쉽지가 않을 거라고 친구들이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곧 잘 저녁을 사기도 하고 친구들보다는 돈을 더 많이 썼다. 그런 그녀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 보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해 보였다.

 

오십을 넘어선 어느 날 친구들이 건강검진을 권유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녀도 거절을 하지 않고 종합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했다. 난소암 말기였다. 대장까지 전이가 되어서 대장을 몇 센티 잘라내고도 어딘가로 전이가 됐단다. 그런 그녀를 친구들은 걱정이 되어 쉽게 위로 전화도 못했다. 그런 그녀는 보기보다 생각보다 목소리도 생기 있고 씩씩했다. 너무 망가져 있을 그녀가 걱정되어 친구들은 쉽게 병원에 찾아가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밝고 맑았다. 반드시 나을 거라는 의지도 강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비워서 인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면서 친구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너무 열심히 산 그녀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돈이 있으니까 나을 거라는 그녀의 믿음과 함께 친구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녀를 보면서 세상을 사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생각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집에 있으면 몸이 더 아플 거라는 생각에 나온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이 나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듬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열심히 생활하고 다른 생각이 안날 정도로 열심히 산 그녀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만약에 그녀가 수술을 받으면서 다시 숨 쉬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가족들과 그녀를 아는 지인들은 그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친구들은 그녀를 동정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이야기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 진정 나를 위해 사는 것은 무엇일까를 수없이 생각한다. 요즘 나는 친구를 보면서 웰다잉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벌써가 아니고 천천히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름답게 세상을 떠나는 것도 참 중요하겠구나를 생각해 본다.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관절염이란다. 할머니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십대 초반에 퇴행성이라니까 헛웃음이 났다. 의사가 위로 한답시고 하는 말 미리 뼈에 윤활유를 주는 거라 생각하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칠십까지 산다고 치면 이십년이 남았는데 이십년 동안 이 주사를 맞아야하냐고 하니 좋게 생각하란다. 그래서 또 웰다잉이 생각났다. 잘 사는 게 뭐라고 딱 떨어지는 해답은 없지만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출처 :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글쓴이 : 옐로미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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